농사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, 사람과의 약속입니다.

외할머니는 농부였습니다. 평생을 흙과 함께 사셨고, 그 흙에서 나온 농산물은 식당을 하시던 어머니에게 보내졌습니다. 가족을 위해, 그리고 어머니의 음식을 믿고 먹는 사람들을 위해서였습니다. 할머니에게 농사는 생업이기 이전에 책임이었고, 말없이 지켜온 약속이었습니다.

할머니는 늘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셨습니다. 잘 자란 것만 고르고, 내 손으로 키운 것에만 이름을 붙였습니다. 수확량이나 이익보다 먼저 떠올린 것은 “이걸 누가 먹을까”였습니다. 그 농산물이 어머니의 손을 거쳐 한 그릇의 음식이 되고,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. 그 태도는 가르침보다 더 큰 교육이었습니다.

이제 그 약속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. 농부가 되어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외할머니를 떠올립니다. 오늘의 선택이 그분의 농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지, 이 작물은 사람에게 가는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. 실패하는 날도 있고, 뜻대로 되지 않는 계절도 있지만, 그럴수록 더 배우고 기록합니다.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농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.

이 기록은 완성된 농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.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더 나은 농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의 증거입니다. 농사는 결국 사람을 향한 일이고, 그 약속을 지켜가려는 마음이 농부를 성장시킨다고 믿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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